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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 도립공원

문경새재 도립공원

문경새재이미지

날아가는 새들도 쉬어가는 고개,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 마디마디마다 숱한 사연과 애환이 깃든 곳, 백두대간의 정기를 받은 대자연과 역사,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그곳. 바로 문경새재도립공원이다.

문경새재도립공원은 예로부터 영남과 한양을 잇는 영남대로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갯길인 문경새재를 중심으로 백두대간의 주흘산과 조령산 일대의 원시림이 자연그대로 보존된 청정 휴식공간이다.

새재(鳥嶺)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옛 문헌에 초점(草岾)이라고도 하여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 또는 하늘재(麻骨嶺)와 이우리재(伊火峴) 사이의 「새(사이)재」, 새(新)로 된 고개의 「새(新)재」 등의 뜻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이 있은 후, 3개의 관문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은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사적 제14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나그네의 숙소인 원터와 신구 경상도관찰사가 관인을 주고받았다는 교귀정, 옛날에 산불을 막기 위하여 세워진 한글 표석 ‘산불됴심비(지방문화재자료 제226호)’ 등 많은 문화유적이 있고, 옛 선비들이 청운의 뜻을 품고 넘나들던 장원급제길, 책바위 등 선현들의 발자취도 뚜렷이 남아 있다.

또 임진왜란 당시 장렬히 순국한 신길원현감의 충절과 이곳 천연의 요새를 이용하지 못하고 달래강에 배수진을 친 신립장군의 애환이 함께 서려 있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특히 조선사를 재조명하는 문경새재 오픈세트장이 있어 많은 드라마, 영화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으며, 옛길박물관과 유스호스텔, 자연생태공원 및 생태전시관이 있어 아이들의 체험학습장으로 인기가 높다.

뿐만 아니라 도립공원 내의 생태환경이 원시자연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어 자연경관이 매우 아름답고, 옛 선비들이 넘나들던 문경새재 흙길을 1관문에서 3관문까지 맨발로 걸을 수 있어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힐링관광으로 제격이다.


위치
  •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새재로 932 (상초리 288-1)
문의
  • 054-571-0709 (문경새재관리사무소)

제1관문 주흘관

그 옛날 문경에서 서울로 가려면 1,106m의 주흘산을 넘는 것이 보통이었다. 청운의 꿈을 안고 과거길에 오르던 선비와 떨어져 낙향한 이들, 보부상들과 경치에 반한 시인묵객 등 조선시대 수많은 사람들이 넘나들었을 그 길이 풍경 속에 겹쳐진다.

문경새재 3개 관문 중 옛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제1관문 주흘관. 조선시대 대표적인 관도인 문경새재의 그 첫 관문이 웅장한 모습으로 눈앞에 펼쳐져 있다. 성벽을 따라 마치 사람이라도 지키고 선 듯 깃발이 꽂혀 위용을 드러낸다.

제1관문 주흘관 이미지

이곳은 영남지방과 서울을 이어주는 관문이자 군사적 요새지이다. 고려 초부터 제1, 2, 3관문과 그 부속성벽을 통틀어 조령이라 불리면서 중요한 교통로로 자리 잡았다.

새재 입구의 첫 번째 성문인 주흘관은 우뚝 솟을 ‘흘’자와 빗장 ‘관’자를 쓴다.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성이라 하여 평상시에는 빗장을 잠그듯 문을 잠가 놓는다하여 빗장 ‘관’, 바로 뒤 병풍처럼 둘러친 문경의 진산 주흘산을 상징하여 ‘우뚝 솟을 흘’자를 쓰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제1관문인 주흘관은 숙종 34년(1708)에 축조되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우리나라 최초의 공사 실명제를 이곳 주흘관에서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숙종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 성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한양과 이어지는 관문인 이곳에 성을 쌓으라고 명했다. 그 명을 받아 물 속과 길바닥에 있던 잡석을 섞어 쌓아 3년 만에 뚝딱 성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잡석을 섞어 견고하게 쌓지 못한 터라 불과 3년 만에 성은 무너져버렸다. 노한 숙종은 성을 쌓은 이들을 쫓아내버리고 이후 성을 쌓을 때에는 쌓은 이들의 이름을 넣도록 하였다. 바로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공사 실명제였던 것이다.

성벽에 새겨져 있는 것을 각기라 하는데, 그 각기에는 공사에 참여한 인력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부석수와 공사를 책임진 별장지기, 돌을 운반한 책임자와 그 돌을 운반한 사람들의 이름까지 모두 각기에 새겨졌다. 그 결과 성은 견고하게 쌓였고 오늘날까지 튼튼하게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공사실명제 덕분인 것이다.

이후 구한말 항일의병전쟁 때 일본군이 불태웠던 문루를 1922년에 다시 지었으며 1966년부터 74년까지 보수공사를 진행하여 오늘에 이른다.

장엄한 모습으로 우뚝 선 제1관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 2개의 협문을 이룬다.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대문은 높이 3.6m 폭 3.56m, 두께 11cm 규모이다.

주흘관에 있는 조령편람(鳥嶺便覽) 정묘(丁卯) 1927년 9월에 정규원 문경군수가 지은 현판에 의하면, 선조 5년에 설진하여 570여명을 배치하였다고 하나, 선조실록이나 다른 기록에서는 전혀 설진 기록이 없다. 그러나 조령편람을 개첨한 것이 일제강점기였고, 원귀 3년(元龜三年)이라는 일본의 연호가 있다. 이는 선조 5년부터 설진한 천험의 요새가 임진왜란에 쉽사리 방어치 못했음을 강조하여 조선의 무방비와 일본의 전공을 자랑하기 위한 가증스러운 기록으로 생각된다. 문경현지에 의하면 영조 28년(1752)에 설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관문 오른쪽으로는 수구문이 있는 것이 눈길을 잡는다. 이곳은 최양업신부가 조선말 천주교박해를 피해 교우들과 숨어 지내며 이 수구문을 통해 소식을 전했다고 한다. 김대건 신부에 이은 두 번째 한국인 사제였던 최양업 신부는 당시 문경새재와 하늘재를 넘나들며 경상도와 충청도 지방의 순회 전교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새재입구에서 순교하여 천주교 성지로 지정되어 있다.

수구문은 쉴 새 없이 개울물을 흘려보내고 있는데 굳건히 선 관문과 어우러진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위치
  •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새재로 932 (상초리 288-1)
문의
  • 054-571-0709 (문경새재관리사무소)

제2관문 조곡관

제2관문 조곡관 이미지

중성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조곡관은 늠름하면서도 고운 자태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조곡관(鳥谷關)은 영남에서 서울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였던 문경 조령의 중간에 위치한 제2관문이다. 이 관문은 제1, 3 관문 및 부속성벽과 함께 사적 제147호로 지정되었다.

삼국시대에 축성되었다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조선 선조 25

년(1592)에 왜란이 일어난 후 충주인 신충원이 이곳에 성을 쌓은 것이 시초가 되었다.

숙종 34년(1708) 조령산성을 쌓을 때 매바위 북쪽에 있던 신충원이 쌓은 옛 성을 고쳐 개축하였으나, 관은 영성(3관문)과 초곡성(1관문)에만 설치하고 이곳에는 조동문을 설치하였다.

현재의 시설은 1907년 을미의병 시 훼손되어 폐허가 된 것을 1978년에 복원한 것이다.

관문 정면으로는 ‘조곡교(鳥谷橋)’라 쓰인 다리가 놓여 있고 그 아래 흐르는 계곡과 관문이 어우러진 풍경은 누구나 담아가지고 갈 만큼 매우 아름답다.

관문 가까이로 가면 통행할 수 있는 육축의 홍예문이 보인다. 홍예문은 높이 3.6m, 길이 5.8m이며 여기에 설치된 대문은 높이 3.6m, 폭 3.56m, 두께 11㎝의 판문이다.

상부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문루를 세운 다음 양 측면 쪽으로 출입할 수 있도록 협문을 2개 세웠다.


위치
  •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새재로 932 (상초리 288-1)
문의
  • 054-571-0709 (문경새재관리사무소)

제3관문 조령관

긴 거리만큼 흘린 땀이 산뜻한 바람에 날려갈 때 즈음 드디어 마지막 관문인 제3관문에 당도한다.

영남에서 서울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였던 문경 조령의 중간에 위치한 제3관문 조령관(鳥嶺關). 이 관문은 제1, 27관문 및 부속성벽과 함께 사적 제147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새재 정상에 우뚝 솟은 조령관은 어쩐지 더욱 늠름해 보인다. 조령관은 북쪽의

제3관문 조령관 이미지

적을 막기 위해 선조 초에 쌓고 숙종 34년(1708)에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3관문은 1관문과 같은 시기에 쌓았다.

여기서 가만히 관찰해보면, 1관문은 남쪽을 바라보고 쌓았고, 3관문은 북쪽을 바라보고 쌓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1관문은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성이고, 3관문은 오랑캐의 적을 막기 위해 쌓았기 때문이다. 또한 적진에 대비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타원형으로 쌓은 1관문, 3관문과 달리 중간에 세운 2관문은 일자형으로 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3관문 조령관은 1907년에 훼손되어 육축만 남고 불탄 것을 1976년도 홍예문과 석성 그리고 누각을 복원했다고 한다. 조령관을 기준으로 남쪽은 경상북도 문경 땅이고 북쪽은 충청북도 충주 땅이다. 이곳에서 북쪽으로는 마패봉을 지나 북암, 동암문, 부봉, 주흘산으로 가고 남쪽으로는 깃대봉, 조령산 공산진, 이화령으로 이어진다.

누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좌우에 협문이 2개 있는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문루의 북쪽 정면 상부에는 조령관(鳥嶺關)이란 편액이 걸려 있는 반면 남쪽 배면 위에는 영남 제3관(嶺南

第三關)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문루로 올라 다니는 계단은 육축의 뒤편 양쪽에 ‘ㄴ’자형과 ‘一’字形으로 각각 달리 설치되어 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문경새재 길은 쉼 없이 달려 영남의 마지막 관문인 조령관과 맞닿아 그제서야 크게 숨을 쉰다. 어쩐지 아쉬운 마음에 주변을 서성이면 관광들의 한가로운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 옛날 과거길에 오르던 선비들은 떠나기 전 부모님께 하직인사를 올리며 “아버님 어머님 제가 영광을 보고 오겠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영광의 광자는 빛날 광(光)자이지만, 오늘날에는 ‘관광’의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시험을 보러 갈 땐 힘들게 올라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가 보이지 않지만, 과거에 합격하여 금의환향할 때 문경새재는 그대로 관광이 되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문경새재! 제3관문 조령관까지 다다랐다면 그 의미를 좀 더 가슴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위치
  •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새재로 932 (상초리 288-1)
문의
  • 054-571-0709 (문경새재관리사무소)

새재계곡

새재계곡 이미지

수정처럼 맑은 물이 주변의 노송, 기암절벽 등의 풍치와 조화를 이루어 경관이 수려한 새재계곡.

영남대로에서 가장 높고 험한 고개이자 예로부터 사회, 문화, 경제의 유통과 국방상의 요 충지이며 과거를 보러 가는 영남의 선비들이 필시 지나는 영남의 관문, 문경새재에 자리 한 계곡이다.

문경새재는 자연경관이 빼어난데 이곳에 위치한 새재계곡은 두말할 것도 없이 아름답다.

수정처럼 맑은 물이 주변의 노송, 기암절벽 등의 풍치와 조화를 이루어 경관이 수려하다.

계곡에는 예로부터 그 경치가 매우 아름다워 시인묵객이 즐겨 찾았다는 경승지, 용추와 낙동강발원지 등 많은 자연자원과 역사문화자원이 산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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